요새는 많이 들리지 않지만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었다. 어떻게든 한국을 뜨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.
그런데 그들이 간과한 것들이 있다. 열심히 돈 모아서 여행으로 간 외국 나라에서는 택스 환급도 받을 수 있고 기껏 해봤자 호텔 예약, 관광지나 스포츠시설이나 레스토랑 예약 같은 것만 해도 충분하지만, 그 나라에서 삶을 꾸리고 산다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...
1. 느린 행정 시스템이 있다.
나는 너무나도 빠른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었다. 몸이 좀 안 좋다는 신호가 있으면 병원 가서 바로 의사를 맞을 수 있는 것, 의료보험으로 병원비가 아주 저렴하다는 것, 주민센터나 은행이나 어디를 방문해도 단시간에 해결을 볼 수 있다는 것, 심지어 방문하기 조차 힘들거나 귀찮으면 인터넷으로 해결하면 되는 것, 이 모든 것이 나를 spoiled 했다.
일본에서 살다 보니 일본의 경우를 본다면... 은행에서 계좌 하나 만드는 데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, 도장을 지참하지 않으면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. 전입신고와 전출신고는 그 지역에 있는 각 구약소 (구청)에서 해야 한다. 전출신고만 하고 전입신고는 안 한다면 이 사람은 붕 뜨는데 그래도 되나 싶기도 했다. 최근에 코로나19로 인해서 지원금이 나올 때도 서류를 우편으로 받아야지만 신청할 수 있었고, 백신 역시 접종권을 받아야지만 신청할 수 있다. 기약 없는 기다림이 여기에도 있다.
2. 돈을 벌어도 돈이 엄청 떼인다.
세금의 이름이 각기 다양할 뿐 총합으로 따지면 어마어마하다. 유럽 쪽에서는 월급의 거의 반 정도를 세금과 연금으로 떼어간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. 유럽에 살아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다. 일본은 확실히 안다. 우리 나라와 비슷하게 건강보험, 국민연금, 소득세 등 빠져나가는데 주민세가 엄청나다. 일본에 산다는 것 자체로 소득에 비례해서 주민세를 내야 한다. 그러다 보니 연봉이 올라도 매년 세후 소득이 동일한 느낌이다. 지금껏 일해왔던 몇 년 동안 항상 그래 왔다.
그리고 전세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우리 나라만의 것이다 보니, 매달 월세를 내고, 전기비, 수도비 (일본은 민영화돼서 이런 비용도 비싸다) 내다보면 남은 돈이 또 줄어있다. 아직 내가 쓸 돈을 쓰지 않았는데도 남은 돈이 적다. 개인 소유의 집을 가질 수 없는 건 여기도 마찬가지다. 우리 나라만 집값이 오른 줄 아는가?
여행으로 오는 사람이 이렇게 은행을 갈 일이 있나, 구약소를 갈 일이 있나, 이런 걸 접해본 적이 없으니 한국이 싫다며 이민 가고 싶다고 징징대지. 또한, 하루하루 터지는 뉴스를 보다 보면 한국인에 대한 인류애를 잃을 수 있다. 그런 뉴스들이 한국에만 일어난다고? 한국어로 된 뉴스에 더 노출되니까 그렇지, 그 나라 가서 그 나라의 언어로 뉴스를 매일 보다 보면 동일한 수준으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. 나도 그렇다, 한국 뉴스나 찾아보지, 미국 뉴스는 관심 밖이고 볼 시간도 없다. 일본에 살아도 일본어 뉴스는 안/못 본다.
이런 것들을 다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고 지긋지긋한 한국을 떠난다 치자. 그런데 떠나는 게 또 쉽지가 않다. 일단 그렇게 본인이 살러 가고 싶어 하는 선진국이라고 칭하는 나라에서는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.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관광으로 돈을 펑펑 쓰러 오는 것 말고 살러, 일하러 오는 것을 말한다. 실력이 없는데 왜 체류를 허용하겠는가. 또한, 같은 아시안이라 아무 말하지 않고 걸어 다니면 자연스럽게 일본인으로 보일 수 있는 그런 나라 조차 말하는 걸 듣고 외국인임을 알게 되면 minority로 인식되는데 더 나아가 인종이 다르고 게다가 아시안이면 자연스럽게 minority가 된다. 말로는 다양성이 중요하고 minority를 챙겨준다지만, 길거리를 다니면서 일반 사람들에게 받는 알게 모를 시선이 있다. 차별이라기보다는 다르니까 쳐다보는 것이다. 다르기 때문에 평생 같을 순 없다. 즉, 본인이 본인의 얼굴색으로 제일 majority를 갖고 살 수 있는 곳은 한국이란 소리다. 외국 나가면 더 낮은 급이 된다.